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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와이너리 소노마 커터
“45년간 양조 책임자는 단 4명뿐”
“45년간 양조 책임자는 단 4명뿐”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영웅 테세우스가 타고 돌아온 배를 오래도록 보존했습니다.나무로 만든 배가 세월을 온전히 견딜 수는 없었겠죠.널빤지가 썩으면 떼어내고 새것으로 바꿨습니다.수리가 거듭되자 논쟁이 생깁니다.눈앞에 있는 것을 여전히‘테세우스의 배’로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요.
한두 개를 바꿨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기 쉽습니다.그런데 처음의 널빤지가 하나도 남지 않는다면 어떨까요.모습도 이름도 같지만,영웅이 밟았던 나무는 사라졌습니다.무엇이 남아 있어야 우리는 그것을 같은 배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플루타르코스가 전한 테세우스의 배 역설입니다.비슷한 고민은 우리 주변에도 있습니다.대를 이어 주방장이 바뀐 식당에서 우리가 찾는 것은 같은 간판일까요,기억 속의 그 맛일까요.
특히 와인에서는 이 문제가 더 까다롭습니다.포도부터 해마다 새로 자라니까요.비가 많은 해도,더위가 오래가는 해도 있습니다.양조자는 은퇴하고 와이너리의 주인도 바뀝니다.그래도 같은 이름의 와인을 다시 고르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했던 특징을 기대합니다.달라지는 재료로 익숙한 기대에 답해야 하는 셈입니다.
선장이 내려도 배는 간다
오늘 소개하는 캘리포니아의 소노마 커터(Sonoma-Cutrer)는 이 질문을 따라가 볼 만한 와이너리입니다.1973년 여러 품종을 시험하는 포도 재배 회사로 출발해 1981년 첫 빈티지를 냈습니다.와이너리 측에 따르면 창업자 브라이스 존스는 1970년대 후반 부르고뉴를 다녀온 뒤 샤도네에 집중하기로 방향을 굳혔습니다.이후 이곳의 선택을 이끌어온 질문은‘캘리포니아에서 어떤 샤도네를 만들 것인가’로 이어졌습니다.그리고 그 답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질감입니다.배럴에서 발효하고,효모 앙금과 와인을 함께 두는‘쉬르 리’숙성으로 입안을 채웁니다.다른 하나는 또렷한 과실 향과 산도입니다.풍성하되 무겁지 않아 음식과 어울리는 샤도네.미국 샤도네 하면 떠오르는 짙은 오크 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지향점입니다.
앞서 말한‘테세우스의 배’에 빗대면,널빤지 몇 장이 아니라 배를 띄운 사람이 내려진 사건이었죠.이 뿐만이 아닙니다.2024년에는 덕혼 포트폴리오가 소노마 커터를 인수했고,그해 말 사모펀드 버터플라이가 덕혼 포트폴리오를 통째로 다시 인수했습니다.한 해에 서류상의 주인이 두 번 바뀐 셈입니다.
하지만 셀러 안의 사정은 조금 달랐습니다.현 양조 책임자인 카라 모리슨은 약 45년 동안 이곳의 양조 책임자가 네 명뿐이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윌리엄 보네티,테리 애덤스,임창용 도박에 빠진이유믹 슈로터,그리고 모리슨 자신입니다.앞의 세 사람은 모두 은퇴할 때까지 일했습니다.애덤스는 창립 때부터 보네티 밑에서 부양조자로 일했고,모리슨도 책임자가 되기 전 이곳에서 18년간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모리슨에 따르면 여러 번의 손바뀜으로 달라진 것은 주로 시스템과 소프트웨어 같은 운영 체계였고,양조의 기본 원칙은 유지됐습니다.회사의 주인을 적은 서류와 셀러에서 매일 내리는 판단이 서로 다른 속도로 바뀌어온 것입니다.
그 이름의 병에 무엇을 담을까
그렇다고 양조팀이 오래 일했다는 사실만으로 맛까지 그대로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지켜왔다는 설명과 실제로 지켜졌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과거의 기록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는 있습니다.2002년 당시 양조 책임자 테리 애덤스는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매끄럽고 부드러운 질감을 추구하되 버터 풍미가 지나친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지금 와이너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와인의 방향과 닿는 대목입니다.오늘의 홍보 문구에만 있는 고민은 아니라는 뜻이죠.그 기준을 오늘의 와인으로 옮기는 방식은 더 구체적입니다.모리슨에 따르면 양조팀은 10~20년 숙성된 과거 빈티지를 현재 와인과 정기적으로 비교합니다.숙성한 와인과 어린 와인의 맛이 같을 수는 없겠죠.그 차이를 감안하면서 이 집의 특징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되짚는 겁니다.오래된 병이 다음 와인을 고르는 참고 자료가 됩니다.
이어간다는 것이 모든 와인을 같은 맛으로 만든다는 뜻은 아닙니다.샤도네에 20년 가까이 집중한 뒤에는 부르고뉴의 또 다른 품종인 피노 누아로 영역을 넓혔고,샤도네 안에서도 포도밭에 따라 와인마다 겨냥하는 맛이 다릅니다.무엇을 그 이름의 병에 담고 무엇을 다른 와인으로 돌릴지,양조팀은 해마다 다시 판단합니다.
생산자가 자기 스타일을 지켜왔다면,그 스타일이 어떤 음식 앞에서 제 몫을 할지는 식탁에서 다시 따질 일입니다.셀러에서 어떤 맛을 담을지 골랐다면,식탁에서는 그 맛을 어디에 놓을지 고르는 겁니다.
같은 이름을 붙일 이유
다시 처음에 언급한 테세우스의 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소노마 커터에서는 창업자가 떠났고,주인이 바뀌었고,품종도 늘었습니다.이 집의 정체성을‘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말에서 찾을 수는 없습니다.다만 남는 것은 널빤지가 아니라 판단이 아닐까요.어떤 과실 향을 살릴지,오크를 어디까지 쓸지,어느 구획의 와인에 그 이름을 붙일지.양조자는 달라지는 포도로 그 판단을 이어가고,소믈리에는 오늘의 음식 앞에서 다시 따집니다.마시는 사람은 잔에서 그 이름을 다시 고른 이유를 찾습니다.
어쩌면 와이너리가 자기 이름을 지킨다는 것은,다음 빈티지에도 같은 이름을 붙일 이유를 만들어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 포도밭 이름을 단 두 샤도네,레 피에르와 더 커터는 배럴 선택부터 겨냥하는 풍미까지 어떻게 갈리는지
- 구획별 와인을 약 9개월간 시음해 최종 구성을 정하는 과정과,선택되지 않은 와인이 쓰이는 곳
- 레스토랑 번들 이종빈 소믈리에가 본 화이트 와인 선호의 변화,코스 요리에서 한 병을 고를 때의 기준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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